추억의 뜨락

시온카페 유감

arthe403 2023. 1. 26. 10:19
한 때 '집-교회-학교'가
제 일상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학교 자리에 회사가 대신 했을 뿐
삶을 받쳐온 세개의 축은 지금도 그대로...

학교가 제 삶의 한 축이었던 시절
시온은 학교생활 몸통 그 자체였지요.
그 무렵 시온에 대한 제 사랑은 언젠가
이 밴드에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1985-6년 대학졸업과 삼성입사.
어느 듯 회사가 제 삶의 몸통이 되고,
타지역 근무에다 두 차례 해외생활까지...
실로 다이나믹한 생활이 전개되던 그 때
전화, 편지, off-line 등 사회연결망들도
인터넷, 휴대폰, mobile로 급속히 대체되고
주변의 이런 변화 가운데 몇 몇 친구 외에는
시온이 제게서 거의 실종된 적이 있었지요.
제 나이 30대후반 40대초반 10년간입니다.

2001년초부터 회사 일로 런던에 주재하면서
그나마 몇몇 친구들 마저 소통이 멀어진 시절,
낯선 이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던 부임 1년차
현지적응에 두서없이 경황이 없던 가운데
우연히 다음에서 시온카페를 발견하였고,
그후 종종 들러 몰래 발자욱만 남기다 어쩌다
한중(두산)에 계시던 이정진 선배와 연결되어
시온카페를 소개해 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바로 그 무렵인 2002년,
시온카페는 무서운 소통력을 발휘합니다.
1년간 무려 1,300개 talk이 시온인들간에
오가게 되지요. 그 후 10년간은 불과 600개...
(여긴 이정진 선배의 역할도 적지 않았답니다)

캠퍼스에서 우리 시온의 代가 끊어지고
시온인들간 연결고리 마저 부실하던 시절
천주대장이 어렵게 씨 뿌려 만든 시온카페는
서로의 안녕과 사는 모습에 궁금해 하던
시온인들을 단숨에 연결해 소통이 살아 숨쉬는
소중한 우리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당시 올라온 글을 보면,
"부흥의 불길 타 오르게 하소서"
"시온 선배 가입시키기 운동"
"시온재건 프로젝트"...
이런 슬로건으로 숱한 회생노력들이 있었고
카페 덕분에 끊어진 시온의 맥은 다시 회춘해
42代 후배들도 배출하고 지도교수님을 모신
어엿한 교내 써클로 재탄생하게됩니다.

다시 태어난 시온은,
15대 김중순 선배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현역 임원들이 의욕적으로 재출발은 했지만
그 무렵 불어닥친 학내 동아리활동 춘궁기...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2년만에
파산선고과 함께 다시 소멸되고 말았지요.

까마득한 후배들이 노는 물에서
'늘' 이상태, '터래기' 이정진, 'Idmkim' 김진동...
이 세 분들이 그 물을 휘저으며 선후배가 함께
어울어지기 시작합니다. 곧 뭔가 이루어 질 듯.
그 해 2002년 신년회에는 진희성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고 함께 자리했던 이윤연 선배는
신년모임 소감과 시온 재건각오도 올렸습니다.

요즘은 좀 삐딱한 글과 부러진 글씨로
선배들 심기도 조금씩 건드리곤 하는
언더그라운드 거사 물가에 심은 나무 김정수,
가 보시면 알겠지만 그 시절엔 멀쩡했고(^^)
'tree'라는 id, 반듯한 글과 글씨로 쉼없이
생각을 퍼올렸지요.

또 거기에는
'저... 결혼해요.'
당시 젊은 청춘들 수줍은 결혼소식도 있고,
월드컵 중계에다 찌이네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지금은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교사로 있는
생기발랄 안현정 후배의 촌철살인 글도 있고
비록 요즘 밴드에서는 잠수중이지만
많은 후배들이 그 시절 즐겁게 노닐었지요.

그랬던 우리 시온 카페는 아쉽게도
오픈한 지 15년여만인 2015. 2.26일
천주대장의 시온밴드가입 안내를 끝으로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57주년 시온 돌잔치를 앞두고
시대의 흐름에 비록 시온카페는 멈추었지만
밴드만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옛 시온카페 유감을
올립니다. 돌잔치에서 반가이 뵙겠습니다.

나이가 드니 생각과 말만 길어져서...
알맹이없이 길고 산만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년에는 천주대장이 밴드대상을 한다고 해서...^^

 

                                          - 201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