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아 슬프다~

arthe403 2023. 1. 20. 11:16

아 슬프다~   아침에 병훈이가 학교가는 길에 차 안에서 혼자서 내뱉은 말입니다. 

어제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병훈이가 다소 실망한 듯한 얼굴로 어제 마감한 연세대 생명공학과 경쟁률이 21:1이라고 푸념하듯 내뱉었지요. 나야 지난해 병인이 대입을 준비하면서 익히 경험한 바 있어서 그 정도야 이미 각오한 바였지만 이 녀석은 그래도 좀 더 낮았더라면... 기대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격려 한 마디 해 주었지요. 

걱정마라. 아빠는 그 보다 더한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 남았는데 뭐..  지방대를 졸업하고서도 당시 4~50: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삼성에 입사해서 지금껏 20년 이상을 잘 만 버티고 있는데... 가능하다는 의지! 그것만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자. 아빠랑 함께. 

ㅎㅎ
그런데 앞서 말한 우리 병훈이의 슬픈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7.17일!! 지난해까지는 제헌절 휴일이었는데 금년부터 평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슬프다는 겁니다. 실없는 녀석... 그런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휴일을 하나 잃어 버렸네요.


아~ 나도 슬프다. 
어제는 옛날 한 때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옛 팀원들이 함께 자리해 저녁을 나누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습니다. 91년 제가 구미에서 서울로 옮길 당시의 본사 인사팀원들인데 당시 12명의 팀원들은 16년이 지난 지금은 회사안팎으로 각기 흩어져 다들 다른 모습으로 활동하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팀장을 하시던 분은 이제 모교인 대학 재단이사로 계시고 차석은 모그룹 부사장, 기타 여러 분들들도 좋은 모습으로 각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는 하던 사업이 엎어져 어려움을 겼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어쨌든 1년에 한 번씩 한 자리에 모여 당시로 돌아가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과 정담을 나누는 이 모임이 나는 참 좋고 편안합니다. 대화 도중 큰 회사 중견간부 있는 막내의 "저도 벌써 19년이 지나 햇수로 20년이 다 되었습니다.(속으론... 저도 고참인데 좀 알아주세요...^^)"는 말에 좌중에서는 '아~~ 그러냐~? 너 많이 컷다~' 다들 弄으로 받는 한편에 갑자기 각기 일해 온 햇수를 헤아리느라 생각들이 분주해 보였습니다.

'나는 다음달 7일이면 33년, 나는 28년이 지났고...  나는..' 사실 나도 세월이 많이 흘러 22년이 지나 23년을 거의 채워 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과거를 추억하는 대화는 계속 이어져 급기야는 내가 사표를 내면서 한 달여 기간동안 팀내 긴장을 만들었던 옛날 에피소드로 넘어 갔습니다.

구미에서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지 서너 달쯤 지났을까... 갑작스런 근무환경변화와 함께 나에 대한 상사, 선배들의 지나친 기대, 그리고 당시 내 맘을 비집고 들어왔던 '학교 선생님' 미련의 끝없는 도발에 10~20년후 장래 나 개인의 삶과 비전문제까지 한꺼번에 엮여 일를 끝까지 만류하는 아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퇴직원을 팀 차석께 전달했지요. 그 후 한 달여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하면서 결국 퇴직원은 반려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회사에는 잘 댕기고 있지만...그 때 내가 내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지... 

그래서 어제 저녁자리에서의 얘기인 즉,
갑작스런 퇴직소동이 진행될 당시 나만 몰랐지 다른 팀원들은 다 알면서 모른 채 하고 침묵을 지키며 매일 아침이면 심각한 얼굴로 출근하는 제 눈치를 보며 다들 "어떻게 하면 저 넘, 저 인간, 안 대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머리를 짜내 궁리하며 함께 방안을 궁리했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분들이지요.^^

이제사 하는 얘기,
작심하고 뽑은 칼을 다시 넣으며 만류하던 아내와 약속했었던 한 가지. "앞으로 3년간은 아무 일없이 회사에 잘 다니겠다. 그 대신 그 후로는 내가 어떤 의사결정도 할 수 있고 당신은 그 결정에 함께 하며 지원한다."

 

그때 한 약속, 3년은 이미 다섯 번이 지나 이제 여섯 번째 돌고 있고, 이 속절없는 세월은 이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2008. 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