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연말,
어제도 계속된 모임으로 귀가가 늦었습니다.
어제는 스페인 주재원 모임으로 함께 했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거기는 갈 때마다 즐거운 자리,
자정이 넘어 늦은 시간까지 함께 했지만 어제도...
3,40대 빛나던 젊은시절 한때 멀리 대한민국을 떠나
낯선 이국 스페인 땅에서 끓는 열정 하나로 의기투합해
한마음으로 열심을 다했던 동료들, 맡은 바 소임들을
잘 마치고 귀임해 서울에서 다시 만나는 자리,
때마다 반갑고 편하고 해피한 시간입니다.
사실 난 런던에서 5년을 근무한 영국주재원,
이러저런 사정으로 주재 5년 동안 스페인 출장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다녔고 그들과 함께 고생하며
어려움 가운데 땀 많이 흘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귀임해서 이젠 '반쯤 스페인 주재원 OB'으로
끼워준 것이지요. 고맙게도..^^
스페인...
유럽에서 일하며 경험한 기억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릴 적부터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옛 추억 하나,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7년 겨울...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대구 서현교회에서
시내 고교생들 문학의 밤 행사에 참석했는데
당시 SM, 신명여고 친구 영기를 따라 간 것이지요.
시낭송, 독창, 중창, 연주, 촌극 등 프로그램 후반에
여학생 독창 순서 거룩한 성 (the Holy city) 에 이어
검은 교복입고 기타를 든 까까머리 남학생 하나가
단상에 등장했는데 그로부터 나온 놀라운 사운드,
타레가의 'Alhambra궁전의 추억'은 아~ 놀라웠습니다.
Alhambra가 뭔지도 몰랐다가 훗날 한참 지나서야
그게 스페인 어느 지역임을 알게 되었고 그 곡과도
더 많이 친해 질 수 있었지요.
내 기억을 되살려 당시를 떠올려 보면,
외국은 내게 달나라 만큼이나 멀게만 여겨지던 곳~
그해 초 미국이로 이민간 상택이에게 전화라도 할려면
남대구우체국까지 걸어가서 국제전화를 신청해 두고
10여 분을 기다리다 직원의 콜싸인을 받은 후에야
작은 전화박스에 들어가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그런 옛날 옛적이었지요.
또 다른 추억...
2004년 성탄절이 그리 멀지않던 어느 추운 겨울,
마치 달나라처럼 멀게만 여겨 온 그 스페인 땅에
런던의 내 식솔들을 데리고 간 적도 있지요.
마드리드를 거쳐 남쪽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까지~
세밑 아침, 이국 땅 서설 내리는 알함브라 궁전을
미성이와 애들을 앞세우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아- 숨이 멎는 듯 벅찬 감회가 뭉클 차 오르고...
그때 난 정말...
철모르던 까까머리 고딩시절...
내 상상속에나 자리했던 바로 그 알함브라를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고2 어린 내가... 걸었으니...
어제는 그런 깊은 추억이 잠긴 스페인에서
젊었던 한 시절을 동고동락한 동료들과
행복한 저녁을 먹었지요.
2008.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