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불안

arthe403 2023. 1. 21. 08:38

 不安.

 아무래도 직업병인가 봅니다. 그것도 중증.

 해가 거듭 될수록 깊어만 가는 이 증세.

 오늘처럼 날수가 간 휴일 끝은 더 심합니다.

 

 오늘, 연휴 마지막 날

 나름 충분히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고,

 닷새간 연휴 전체를 보더라도

 비교적 만족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불과 조금전 저녁만해도

 온가족들과 즐겁게 맛있게 잘 먹었는데 ...

 

 아~ 그런데 꼭 이 때, 이 시간쯤이면

 마음 속 어디선가에서 슬그머니 피어올라

 기어코 나의 연휴 끝 평온을 흔들고야 마는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이 불안감.

 

 내일...   나를 잡아갈 누군가가

 아침 출근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이 무너질 일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선 시계초침 소리가 점점 커지고

 오감,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해지기만 합니다.  

 

 내 나이 이제 쉰이 되기까지 긴 시간 겪으면서

 이제 지금쯤은 대강 익숙해질 수도 있으련만

 여전히 늘 대하기 어렵고 불편을 주는 두려운 존재입니다.  

 

 

 사실은...  좀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참 즐겁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들어 왔는데...

 

 바깥 나들이로 피곤해 하던 아내가 느닷없이

 '깔끔하게 한 입 할 만한 스파게티'를 찾는 바람에  

 느닷없는 외식이 탐탁잖고 귀찮기만 한 둘째를

 어떻게 잘 구슬러 함께 나섰지요.

 식당 테이블에 앉은 선남선녀들의 밝고 즐거운 얼굴들...

 약간 산만하지만 행복을 잘 버무린 실내소음이 싫지는 않았고  

 그래서 우리 가족들 기분도 이들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레 up!!

 

 스파게티와 피자와 함께 이런저런 행복한 얘기들을 나누다가

 무심코 마신 콜라 첫 모금에서 문득 30년전 그 아련한 향내가....

 79년 5월, 1학년 축제 때 들뜬 분위기로 교정 잔디에서

 친구들과 마시던 그 콜라 향이 그 때 그 분위기와 함께

 순간 고스란히 떠 올랐습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軍에 가기 전까지 3년간의 대학생활.

 저는 정말 사랑합니다.

 추억하고 또 추억해도 달콤하기만 한 순간들...

 

 캠퍼스를 걷다 귀에 걸린 노래 소절들,

 황금빛 잔디를 씻고 옷깃을 스치던 여린 바람결,

 아직 여물지 않은 친구들의 웃음소리,

 마냥 좋아 따라다니던 선배들의 선한 얼굴,

 비에 젖은 적벽돌, 오래된 건물들,

 도서관서 읽던 한수산의 연애소설,

 낙엽 밟히던 비탈진 오솔길,

 황실다실 어설픈 아마추어 DJ,

 Aphrodite's Child 'Spring summer winter & fall',

 1학년 축제전야, 교정을 채운 'Ballade Pour Adeline',

 교대 여학생, 첫 미팅의 수줍음,

 때늦은 사춘기 가슴앓이,

 아내 미성과의 첫 입맞춤까지

 마치 빛 바랜 사진처럼,  그러나 오늘처럼 너무도 선명하게...

 

 정말 생각치도 않게 코끝을 스친 30년전 콜라향으로 인해

 대학 새내기 둘째 녀석은 아빠의 지루한 캠퍼스스토리를

 리바이벌로 또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녀석 하고는 딱 30年差네요.

 79학번에 09학번.

 

                                                             2009.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