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뜨락

Saturday nigte

arthe403 2023. 1. 21. 08:41

토요일

 

  종일 바깥에서 놀다 오후 늦은 귀갓길~

  가족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영화라도 하나 볼까... 해서 권했더니

  엄마나 애들이나 다들 시큰둥한 모습들...  

  그래도 영화보고 싶은 미련을 버리질 못하고

  결국 저녁먹고 큰 넘 겨우 꼬드겨 집을 나섰지요.

  이쯤되면 가족을 챙기기 보다는 오히려

  아빠를 위해 가족이 희생되는 모양새가 됩니다.  

  못난 아빠같으니...

 

     정신 차리게나
     올빼미여
     이것은 봄비지 않은가

  

  극장가는 길,

  강남교보빌딩앞 네거리를 지나다... 문득 올려다 본

  교보빌딩의 전면 걸개로 크게 쓰여 있었던 글.

 

     정신 차리게나  

     이 녀석아!

     너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은가

 

  따라 나선 큰 녀석 등을 열 번도 더 두드리고,

  뒷통수까지 치면서 장난을 걸었습니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 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이건

  지난해 봄.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려 있던 글.

  아~ 1년전...

  

     먹기 편한 부드러운 것은 배변을 단단하게 하고

     단단한 것은 배변을 부드럽게 한다

                                   - 국민건강본부

 

  영화보고 나오다 들른 화장실 벽에 쓰인 글.

  히히히~

 

 

  집으로 오는 길.

  차안에는 Village people의 'YMCA'가 나오고

  이어 Smokie, Boney M의 노래들이 흐릅니다.

  잠자코 있던 이 녀석이 "야, YMCA다!"

  반기면서 아는 척을 합니다.

  ... 너 YMCA, 이 노래 아니?

  "그럼요... 베이스 하는데 이 노랠 모를리가...".

  그런데 YMCA는 워낙 유명해서 옛날 노래지만

  요즘 애들도 대부분 다 알걸요?."

  그럼... 너 Smokie는 모르지?

  "알아요. 아빠 차안에서 하도 많이 들어서.^^"

  ···

  그러던 중에 '가을비 우산속'이 흐릅니다.  

 

  병인아, 이건 2년전쯤 얘기인데...

  늦가을 비가 오던 날 오후 무렵이었단다.

  수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오는데

  차안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오더라.

  운전하면서 이 노래 가만히 듣던 중에

  갑자기 정민이형 엄마가 생각나서

  정말 오랜만에 전화를 했지. 보고도 싶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사는지 궁금도 하고...

 

  깔깔깔 밝은 표정, 반가운 음성이 들리더니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너 생각을 했다'며

  너무 좋아하는거라... 아빠도 좋으면서도 놀라..

  정민형 엄마도 사실은 아침 학교 출근하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Aphrodite's Child 노래를 듣다가

  절로 아빠가 떠올랐다며 '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러며 둘이서 신기해 하고 좋아하던 적이 있었지.

 

  아빠와 정민이형 엄마는 정말 친했단다.

  그 아줌마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대생이라

  평소같았으면 그냥은 서로 볼 일이 없었을텐데

  서로 강의만 없으면 어떻게든 만나 온데 쏘다녔지...

  학생이 공부를 해야 할텐데 공부는 않고 말이야.^^

  그러던 둘이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던

  '황실'이라는 다방이 학교 길 건너에 있었는데

  그 곳 귀퉁이에는 커다란 유리창을 앞에 둔

  Music Box가 자리잡고 있었고, (너 뮤직박스 아니?)

  안에는 DJ라는 사람이 헤드폰을 쓰고서

  LP판을 흔들어 대며 온갖 *폼을 다 잡고 있었지.

  당시 학교앞 대부분 다방들이 그런 풍경들이었단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Request music이라는 메모쪽지에 적어서

  Music Box 옆으로 난 작은 구멍으로 밀어 넣거나

  waitress를 통해 전해주면 DJ는 친절하게 감정을 보태서

  메모쪽지 내용을 읽어 주고 또 신청한 노래도 들려주었지.

  그런데 그 DJ, 아마추어들은 지금 다들 어디로 갔을까?...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그 무렵 어린 아빠가 즐겨 신청해 들었던 곡이고

  너무 좋아했던터라 아직도 그렇게 기억했나 보더라.

  좋아하는 옛 친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이런 우연한 이벤트를 통해 서로를 떠올리는 것...

  어때... 멋지지 않니?  니 엄마는 분명 질투하겠지만...

   "···"

  어? 이 녀석, 반응이 없네요.

  야~ 임마... 정민이형 아줌마는 정말 친구다 이 녀석아!

 

  지난 주에는 둘째 넘, 오늘은 큰 넘을 데리고...

  허, 참... 내가 뭘 한건지.

 

  오늘...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두드립니다.

  괜히 마음이 넉넉해 지는 토요일 밤이니까...

 

                                               - 2009.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