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잡고
지난 주말,
대구 어머님께서 집에 오셨습니다.
3년전 런던근무 마치고 귀임한 이래
대구 내려갈 때면 잠시 뵙기만 했을 뿐
그리 긴 시간을 함께 한 적은 없었지요.
근데 우리 어머님 더 연로하시기 전에,
거동 가능하신 지금이라도 곁에 모시고
함께 지내는 건 어떨까.. 미성이 의견이
고맙고 반가와 그렇게 하자 했습니다.
지금 우리 어머님 연세는 85세...
어제 서거하신 DJ보다 한 살 아래,
겉으로 뵙기엔 여전히 성해 보이지만
이제 정말 많이 늙으신 할머니입니다.
언젠가부터 허리도 조금씩 굽어가고,
걸음걸이나 동작도 많이 느리시고,
기억도 예전과 같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아직 사흘 밖에 안되서 그런지
우리 집이 그리 편치 않으신 듯도 하고
심지어 불안하신 듯한 표정도 있습니다.
막내집이라 편히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두고 온 대구집만 자꾸 뒤돌아 보십니다.
마음이 아프고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어제 퇴근후 저녁 산책은
평소와 달리 아내 대신 내가 모셨습니다.
낮에는 더위로 계속 집에만 계신 듯 해서
저녁 바람이라도 쐬시게 할 요량이었지요.
아파트 단지내 산책길을 걸으면서도
집에서 멀어짐을 내내 불안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멀리는 못가고 단지내 오솔길 걸어
작은연못, 가족텃밭, 개구리집...
주변을 돌다가 근처 조용한 벤치에 앉아
얼마간 쉬다가 들어왔습니다.
저기 숲에서 나는 귀뚜라미 소리에
얘야, 저 소리가 무슨 소리고?
예.. 어머님, 귀뚜라미 소립니다.
어머님 해마다 이맘때면 늘 말씀하셨지요.
아무리 더운 땡볕여름도 광복절만 지나면
다 고개숙이고 어디선가 귀뚜라미들 나와
저 넘들 울면서 가을이 시작된다고...
어머님,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
오늘은 귀뚜라미가 저리 울고 있지만
요 얼마전에만 해도 개구리가 많이 울었지요.
어머님이 오신다니까 개구리가 다 들어가고
귀뚜라미가 나타났네요..?
잠시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계시더니.
갑자기 나즈막이 노래를 읊조리십니다.
개굴개굴개구리 목청도 좋다.
아들손자며느리 다~모여서...
나도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아들과 함께 노랠 부르니 좋으신지
개구리 노래에 이어 하나더 부르시는데
운율을 보니 아마도 일본동요인 듯 합니다.
딩동댕...
어머님 기분이 좋아보여 하나더 주문했지요.
옛날 흘러간 유행가를 하나 부르시는데...
나도 어렴풋이 아는 노래긴 하지만
평소 늘 성경찬송만 친구하셨던 어머님에게서
이런 유행가 가락은 처음이고 또 낯섭니다.
언제 이 노래를 익히셨나?...
한강에서 불어 오는 선선한 바람이 참 좋습니다.
오늘 어머님과 산책은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잠시 뭔가 생각을 하시더니
바~우고개 앉~아서...
결국 우리 어머님 18번이 나옵니다.
이 곡은 어머님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
가끔 우리 가족들 함께 노래라도 부를 때면
꼭 이 곡을 준비해 드렸지요.
노래를 마치시더니
아이고... 이 노래만 부르면
돌아가신 너거 아부지 생각이 난다.
쉰아홉, 이른 나이로 가셨지만
참 바르고 생각이 많은 양반이었는데...
내 열아홉살 때 너거 아부지 스물일곱살,
경산읍교회 같이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어떻게 나를 예쁘게 봤는지...
어느 날 너거 아부지가 프로포즈하시더라.
외할아버지는 이미 교회에서 잘 알고 계셨고...
그래서 아부지 편지도 종종 전해주셨단다...
꼬꼬 할머니 입에서 '프로포즈'라니요...
참 생경스럽고 이상합니다.^^
우리 어머님의 러브스토리...
추억에 잠기신 모습이 아주 아름다왔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오래 건강하셔서
이 순간 두 분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출근길에 잠시
어제밤 어머님 손잡고 한 산책길이 생각나
한자 적으려 했는데 길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상 더 이상은 어려워 이만...
아래 詩는,
아침 출근길에 즐겨듣는 라디오에서
어제 아침에 들은 것인데
내 마음을 아픔으로 깊이 흔들었습니다.
****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 손용환
주님,
지금까지 전 제가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가난한 마음을 지녔고,
슬퍼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당신께 희망을 두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가난한 사람입니까?
적어도 저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넉넉한 돈을 가졌습니다.
매일 같이 좋은 옷을 걸치고
따뜻한 음식을 먹습니다.
성대한 잔치에 수없이 초대되고
그곳에서는 늘 상석에 앉아 기쁨을 나눕니다.
그런데 주님,
이상한 것은 제가 언제부턴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를 회피하려 합니다.
아픈 사람의 전화를 받으면
찾아가 기도하는 것도 귀찮아합니다.
힘든 것은 자꾸 피하려 하고
쉽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만 찾으려 합니다.
그러니 제가 가난한 사람입니까?
지금 배고프고,
지금 우는 사람입니까?
주님,
저는 어느새 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이대로 영원히 가라."
지금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의 행복이 깨지는 것입니다.
혹시 제가 병들거나,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입니다.
주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당신을 전해야 하는 제가
가난한 마음을 잊었으니,
무엇으로 당신의 맛을 낼 수 있습니까?
당신의 향기를 내지 못하는 제가
무엇으로 당신을 전하겠습니까?
주님,
두렵습니다.
부유함을 버려야 하는데
욕심이란 놈이 저를 꽉 잡고 있습니다.
당신 앞에 순수해야 하는데
타협이란 놈이 저를 놓지 않습니다.
2009. 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