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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엄마가 뿔났다

by arthe403 2023. 1. 20.

어젯밤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주인공인 엄마, 김혜자가 흐뭇한 얼굴로 노트를 꺼내 뭔가를 끼적이는 모습... 이 장면에서 나는 문득 지난 봄 COEX에서 아내와 함께 본 영화를 떠 올렸습니다.

 The Bucket List, 백전노장 잭니콜슨과 모건프리먼이 시한부 인생의 노인역을 맡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꽤 인상깊게 본 영화인데 언제 DVD가 나오면 다시 보려 합니다.

다시 어젯밤 드라마로 돌아가 보면, 우여곡절 끝에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의 허락을 받아 1년 안식년으로 혼자 혼자 원룸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김한자, 그 한자 役의 김혜자가 노트에 적은 것은 다름 아닌 안식년에 하고 싶은, 말하자면 버킷리스트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컴퓨터배우기, 동해바다 보러 가기 등등 이 시대 나이든 여인네들이 가질만한 소박한 희망들입니다.


"당신, 저기 저...   김혜자가 보내는 안식년을 어떻게 보세요?" 문득 나와 함께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묻습니다

나 : 좋은데? 난 긍정적이고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 : 그래요? 만일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나 : 그렇게 하게 해 줄께. 정말로.
아내 : 진심이지요?
나 : 진심이지. 그런데 문제는 당신이 그렇게 긴 시간을 혼자서 보낼 수 있을까 싶다. 애들 없이, 나없이 사나흘은 몰라도...
아내 : 그렇겠지요?
지금 생각으로는 잘 참으면 한 달 정도는?...  며칠만 지나면 가족생각에 도저히 혼자는 더는 못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남편이고 애들이고 다 뿌리치고 하다 못해 햇반으로 끼니를 때울지언정 정말 혼자 뒹굴면서 푹 좀 쉬고 싶은 생각이 하루 몇 번씩 들 때도 있거든요...
나 : 이해하지... 더군다나 영국에서 돌아와 두 녀석 학교 일로... 훈이 학교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원하는 모양으로 다 들어 줄께. 진심으로~
아내 : 아니에요. 됐어요.
그런데...  정말 당신께는 그렇게 해 드릴게요.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당신이 회사를 그만두게 될 제가 참한 오피스텔 하나를 준비해 드릴테니 집이 좋으면 집에서,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서... 환경에 전혀 구애받지 말고 그 곳에서 편하게 당신 원하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세요. 글을 쓰시던지, 음악을 듣던지, 친구를 만나던지...
나 : 어이구 고맙습니다. 당신 말씀만 들어도...
아내 : 아니에요. 정말 그렇게 해 드릴게요.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나 : 흐뭇...

이 시대 대부분 남자들처럼 나도 여러 사정으로 TV를 자주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휴일에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라도 종종보게 되지요. 그 때면 아내는 눈과 귀는 TV에 고정한 채 입에서는 지난 스토리가 자동으로 흘러 나옵니다. 나를 위한 재방송이지요. 미성이는 어찌 저리도 말을 잘하고 기억력도 좋을까?...

어제도 그렇게 드라마를 보다가...   아내의 기특한 생각에 흐뭇한 시간도 덤으로 누렸지요.
  
                                                                                                                                                      -  2008.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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