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갑이는 高2 때 같은 추완실 선생님 班.
나는 지금도 교직에 대한 미련이 여전한데
젊은 나이에 교단을 떠나신 추 선생님은
그 후로 어떤 모양의 삶을 사셨을까?
1977년 여름인가보다.
내가 다니던 영대앞 작은교회 중고등부에서
매년 '사랑의 빛'이란 문학지를 만들었는데
그 해 임원을 맡고 있던 우리 高2가 편집진.
남녀학생 몇 명이서 매주말 누구 집에 모여
글 쓰고 편집하고, 스텐실에 가리방 긁으며
詩, 독후감, 간증, 탐방, 앙케이트...
이런 식으로 문학지는 채워져 가고 이제
원고 마감을 앞두고 詩든 산문이든 뭐든지
우리도 한 편씩을 써 내야 할 상황인데...
당시, 왠지 오그라든 자존감에
매사 자신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읽은 책도 없고 중학시절 곤장선생의 강제로
쓰게 된 일기 몇 쪽만이 내 筆歷의 전부였던...
아무튼 뭘 쓰고 읽는 일에 완전 젬병이던 나,
그러나 읽은 척, 쓰는 척은 해야 했던 그 때
어쩌다 이 고민을 김무갑이에게 털어 놓았고
착한 무갑이 아무 말 없이 내 고민을 듣더니
며칠 후 독후감 3장을 떡~하니...ㅎㅎㅎ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지금 원주서 폭염 가운데 성당을 짓고 있는...
어이~ 무갑이! 이 글 보고 있나??
마이 고마우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는
좀 낯설지만 이국, 이지적 삘을 풍기던 이름,
그 두 주인공 주연의 고급 철학적 성장소설.
트통 독트린처럼 생긴 저 위의 무슨 선언문,
저게 있어서 뭔가 더 있어 보였던 독후감!
내 체면을 한껏 살려준 그 멋진 원고로
가련한 내 고민을 거두어 주었던 무갑이!
'나으' 데미안은 학생회지에 당당히 실렸고
그 계기로 나도 이른바 문학이란 것에 눈을 떠
다른 넘들은 모두 대입 준비로 바쁜데 나홀로
늘 그늘져 있던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며...ㅎ
그 해 '사랑의 빛', 어디에 하나 없을까?
따뜻하고 고마웠던 우정의 징표이자
내 학창시절 불순했던 양심^^의 물증!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무갑이에게 그 글 돌려 주어야...
- 2018. 8.12
추억의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