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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여름 휴가 - 2010

by arthe403 2023. 1. 24.

세월은 마치 살과 같아서... 오늘이 벌써 立秋.
이제 "지난 여름 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올 여름휴가.

 

* * *

             

7.26(월)

 

아기다리고기다리던...

 

7월말, 연중 최고의 휴가시즌이라지만 주말을 피한 탓에 도로사정도 나쁘지 않고,

날씨도 한주 내내 장맛비를 예고하더니 더워서 그렇지 오늘 첫날부터 좋습니다.  

여름휴가 운전 길에는 좀 덥더라도 빗줄기보다야 뙤약볕이 한결 낫지요.

 

지난해 좋은 기억과 함께 너른 공간, 열린 자연환경이 좋아

그저 호텔만을 고집하는 아내의 뜻을 마다하고 거제 남쪽 와현 바닷가에

'필그림'이란 팬션을 빌렸는데 도착해서 보니...

먼저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예찬과는 달리 숙소도 그렇고 주인장도 그렇고...

우선 아내에게, 그리고 좋은 곳을 기대한 애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작년 휴가를 보냈던 태안 '자드락'을 생각하고서 내가 고집해서 정했는데...

 

짐을 정리해 놓고 보니 오후 4시.

가족 만장일치로 먼저 거제도의 상징, 포로수용소를 찾았습니다.

차로 30분쯤 걸리는 운전길을 가며 생각보다 섬이 크다 느껴졌습니다.

전엔 몰랐는데 이 거제도가 제주도 다음 국내 두 번째로 큰 섬이라네요.

평소 전쟁의 현실과는 무관한 이 녀석들, 수용소 포로생활관, 옛날 막사, 무기들을 보면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 말없이 진지하게 그렇지만 흥미로운 눈길로 전시관 곳곳을 살펴봅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대해서는 나도 그저 막연히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오늘 이 견학을 통해

수용소의 역사, 공산포로 폭동, 수용소내 이념대결, 포로교환...등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동 몽돌해수욕장.

거제도 남쪽에 있는 아담한 해수욕장인데 작고 검은 조약돌로만 채워진 해변이 이색적입니다.

맨발로 애들과 함께 조약돌로 수제비 뜨기 시합도 하고, 예쁜 몽돌을 찾아 엄마 선물도 하고...

몽돌을 한웅큼씩 쥐고 해수욕장을 나서는데... '외부유출금지' 주의문이 있네요. 으이크!

해질녘 긴 그림자가 조용히 번져 가는 이 작은 해안가가 참 맘에 듭니다.

여건이 되면 언제 한 번 다시 찾고 싶습니다.

 

바람의 언덕.

언덕 위에는 커다란 풍차가 하나 놓였고,

아래로는 저 멀리 점점이 크고 작은 섬들이 떠 다니는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엄마는 큰 녀석과, 나는 둘째와 각기 짧은 데이트.

석양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가 너무 좋습니다.

구비진 길 오른켠에 쉼 없이 나타나는 붉은 노을과 잔물결 진 해금강 고요한 바다, 섬들...

계획없이 그냥 들어선 길이었지만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환상적인 드라이브였습니다.

 

 

7.27(화)

 

아내 미성이와 새벽 해변산책.

작고 순박해 보이는 와현해수욕장, 모래밭 여기저기엔 텐트들도 보입니다.

이맘때쯤이면 늘 해변을 어지럽히곤 하는 상혼이 여기엔 없는 듯 합니다.

지난해 오월 해운대 새벽산책, 그 느낌을 지금 이 곳에서 기대하긴 무리...

저기 해변 끝에 선착장이 있어서 가 봤더니 해금강유람선이 시작하는 곳이네요.

 

해금강과 외도유람.

원래 내일 순서였지만 날씨가 허락할 때 배를 먼저 타자는 아내의 말에 곧 바로 표를 끊었지요.

낮게 깔린 海霧를 해치며 작은 섬들 사이를 유영하는 해금강유람선.

백발의 나이드신 가이드가 지나는 섬과 바위마다 온갖 비유로 잘 버무려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나는 해금강의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봅니다.

몇 년 전 베트남 출장 때 들렀던 유네스코 문화유산 하노이인근 하롱베이,

참 인상깊게 봤지만 이 곳 남해 해금강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도 보타니아,

이창호, 최호숙 부부가 일평생을 투자해 조성한 섬.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정원과 각종 식물들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구석구석 정성으로 다듬은 공간...

먼저 간 남편을 그리며 그간의 役事를 기록한 남은 아내의 글이 마음에 남습니다.

조각공원 곳곳에 놓인 친숙한 작품들, 아들과 엄마, 평화...

'나는 외도도 필요없으니 당신만 내 곁에서 건강히 오래오래...'

돌아오는 뱃길에 문득 아내가 농담에 담은 속마음을 흘립니다.

 

거제조선소 견학.

일정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삼성조선소 가까이에 왔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어제 밤 잠자리에 들다말고 다시 일어나 거제조선소 홍보실로 메일을 보냈지요.

 

발신인 : 안찬영 <chanyoung.ahn@samsung.com>

발신일자 : 2010/07/27  00:19 (GMT+09:00)

제목 : 조선소 견학 - 전자 안찬영 상무입니다

안녕하세요? 안찬영 상무입니다. 별다른 계획없이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거제에 왔는데

와서 생각해보니 이 기회에 우리 삼성조선소 모습을 애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공업 홈페이지 안내를 봤더니 3일전에 꼭 예약을 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네요. 저희 가족은 28일 오전에 거제를 떠날 예정인데...

혹시 이번에 저희 네 명 가족이 조선소를 견학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가능한지 여부를 이 싱글 또는 휴대폰으로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제 휴대폰번호는 010-0000-0000 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런데 아침 이른 시각에 정말 홍보실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견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조선현장만 간단히 둘러봐도 좋은데 괜히 일이 커지고 번거로워지는 것 같아서

일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yard tour program에만 참여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이렇게 오시는 분들이 많아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있다며 편히 오라고 했습니다.

결국 더운 여름에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오후 1시, 홍보실 직원의 안내로 먼저 본관 홍보전시관부터 시작했습니다.

유조선, 컨테이너선, LNG선은 물론 FPSO, LNG-FPSO, 쇄빙선, 크루저 등 모형들을 보며

안내 여직원으로부터 조선소의 역사와 기술변천, 다양한 선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는데

마지막 코스인 '선박운항 시물레이션'은 우리 애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앞에 펼쳐진 커다란 스크린을 보며 큰 유조선으로 직접 대양을 항해하는 시물레이션인데

보통사람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기회였습니다.  

 

홍보관 tour에 이어 별도로 준비한 차량을 타고 Yard tour에 나섰습니다.

선각공장, 도장공장, 도크 1,2,3…  800톤 골리앗 크레인을 거치면서 조선소의 진면목을 보았지요.

체감온도 4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곳 거제조선소에서 일하는 직원수가 23,000명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중공업직원만 해도 13,000명.

이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10,000대를 넘는다고 하니...

골리앗크레인, 지게차 등 작업 중인 장비들이 워낙 커서 마치 아바타에 나오는 로봇 같습니다.

바쁜 시간 챙겨서 수고해 준 홍보팀 담당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우리는 통영으로.

이제 머리가 굵어져 가는 녀석들에게 '아빠의 위상'을...  흐뭇한 마음도 일었습니다. ㅎㅎㅎ~

 

충무공의 도시, 통영에 왔으니 먼저 한산도에 가서 이순신 장군의 유적을 보기로 하고

남망산공원을 거쳐 한산도행 여객선터미널을 찾았습니다.

한산도는 임란때 충무공께서 학익진으로 왜군을 섬멸했던 한산대첩 바로 그 곳!

30분쯤 배를 타고 고요한 바다를 가니 여러 섬들 사이로 한산도가 얼굴을 내밉니다.

충무공 위패를 모신 제승당, 수루, 대첩문... 수루에서는 멀리 한산도 앞바다가 시원스레 나타납니다.

제승당을 오가며 머릿속에서는 '칼의노래'에 김훈이 상세히 서술한 충무공의 일상이 쉼없이 펼쳐집니다.

 

제승당에서 저 건너 수루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구원이 엄마예요...'

아- 영국에 있을 때 한빛교회를 함께 다녔던 지순구 집사 내외를 만났습니다.

세상은 이렇게나 좁습니다. 2005년 지 집사 내외가 귀국한 이듬해 우리도 뒤따라 귀국했는데

그 후로 5년 만에 한산도, 이 엉뚱한 곳에서 예고없이 조우했습니다.

내미는 명함에는 '조달청 대구지청장'이라 적혀 있습니다. 런던에서 근무후 귀임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나가 3년을 근무한 후 복귀해 지난 4월부터 대구에 있다 했는데 

세월이 비켜 갔는지 내외 모두가 그 때나 지금이나 얼굴이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보였으면 좋으련만...

   

숙소에 도착하니 9시.

씻고 정리하고서 그냥 잠자리에 들려니 뭔가 아쉬움이 남아 괜히 애들에게 장난을 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미성이가 얼마 전에 배운 '철수윳놀이'가 재미있다며 하자길래 윳을 찾다가

그만 칲 상자에 든 화투에 낚여 결국 점백 고스톱으로 종목을 바뀌어 버렸습니다. ㅋㅋㅋ

우리끼리 이렇게 화투를 가지고 노는 건 생전 처음입니다. 애들이 화투를 아는지 조차도...

그런데 이 고얀 눔들... 학교에서 이미 다 배웠다네요. 학교는 그래서 참 좋은 곳입니다.

한 시간쯤 놀았는데 병훈이 녀석은 가진 돈은 물론 엄마에게 임시변통한 돈 마저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엄마로부터 빌린 돈 3,000원은 집에 돌아가서 '설거지 알바 1회'로 갈음하기로 했지요.  

 

 

7.28(수)

 

창문을 통해 드는 선선한 바람과 천정에 콩알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새벽, 이른 시간부터 이 바닷가에 주룩주룩 여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슴이 시원해 오는 것이 뭔가 색다른 하루가 열릴 것 같은 기대감이 입니다.

 

비내리는 아침, 혼자서 한적한 해변가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해변가 텐트들은 이제 철수하느라 바쁜 모습입니다. 비를 맞으며...

비에 젖어 인적이 끊긴 작은 해수욕장은 이제 마치 비 맞은 새처럼 처량해 보입니다.   

부산행 Ferry를 타려고 장승포터미널에 확인했더니 악천후로 출항이 취소되었다고 하네요.

으이그~ 결국 자동차로...

 

통영, 진해, 김해를 거쳐 3시간이나 걸려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습니다.

새로 난 부산의 명물 광안대교를 애들에게 보여 주려고 약간 돌아서...

찌푸린 날씨에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요것이 휴가스케줄에 부담이 되선 안되지요.

어릴 적부터 이름만 들어온 '해운대 암소갈비'로 가서 우선 배부터 든든히 채우고,

아내의 제안으로 신세계 센텀시티로 향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

1층 입구에는 기네스협회 인증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대형 mall처럼 생겼지만,

어떻게 보니 서울 신세계 강남점을 뻥튀기한 확장판같아 보이기도 보입니다.

어쨌든 국내에선 보기드문 이 scale이 래방객을 압도합니다.

 

가족이라지만 취향은 모두 다른 법.

한시간 동안 각자 원하는 것을 한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서 해산.

나는 5층 교보문고로 가서 책 구경을 하였지요.

신간코너를 지나며 몇 권 사고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모반의 연애편지, 시간여행자의 아내, 그림에 스미다,

청소년을 위한 추천영화 77편... 괜한 짐이 될 것 같아 나중에 사기로 하고

그냥 매대 옆에 서서 이책저책 몇 페이지씩 뒤적여 보았습니다.

어? 칠순을 넘긴 이어령 교수도 글에다 아내를 '인숙'이라 부르고 있네요?

Monika Martin이 생각나 음반가게를 찾았더니 역시나 없습니다.

집에 가면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구입해야할 것 같습니다.

 

벌써 한시간이 지났나?

저기서 미성이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미소를 흘리며 다가 옵니다.

10년을 애용해 온 손부채를 망가뜨리고 아쉬워 하더니 참한 것 하나 발견한 모양입니다.

병훈이도 책을 한 권 들고 오네요.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우리는 휴식이 필요하니 오늘은 이 곳에서 그냥 쉬기로 했습니다.

Spa에서 쉬며 저녁까지 해결하고 Cine de Chef에서 영화 'Inception'을 보기로.

그런데 그냥 쉬려고 들어간 Spa가 장난이 아니네요. 정말 훌륭합니다.

만일 서초동 황금온천이 2차원이고, 그동안 내가 경험한 최고의 사우나가 2.5차원이라면,

센텀시티 Spa는 4차원 그 이상입니다. 깨끗하고 크고 다양하고 편안하고 쾌적하고 재미있고...

 

휴가핑계로 사치를 좀 부려 premium 영화관에서 비싸게 본 영화, Inception.

理解不可. 내 머리가 나쁜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도중에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졸았습니다.

미성이도... 의자가 너무 편해서...

4차원*5차 방정식의 복잡한 구조인데 두 녀석은 재미있게 잘 봤는지 둘이서 복기를 합니다.

호텔로 돌아오니 거의 12시.

비오는 휴일,

편안하게, 멋지게 쉰 하루였습니다.

 

 

7.29(목)

 

아내와 아침 해운대해변을 산책하려다 발길을 돌려 오른쪽 동백섬으로 향했습니다.

평일인데도 산책과 운동을 나선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들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들...

섬 가장자리 해변을 끼고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 동안 해운대를 여러 번 찾았지만 이 곳 동백섬에 발을 딛기는 처음입니다.

아니 말로만 들어 온 동백섬이 해운대에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 ♬'...  조용필 노래도 혼자 읊조려 봅니다.

 

아침볕이 벌써부터 따갑습니다.

이 두 눔은 도대체 밤에 뭘 했는지 늦은 시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요.

억지로 데리고 내려가 아침은 먹였지만 밖에서 뭘 할만한 컨디션이 아니어서

오전에는 모두가 각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그냥 쉬기로 했습니다.

 

침대에 올라 다시 잠을 청하는 아내를 옆에 두고 나는 트위터 연구에 돌입.

먼저 전반적인 메카니즘부터 이해하고 Following 대상을 찾아 30명 정도를 등록했지요.

이 가운데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세계적인 인물도, 그리고 미셀 위도 쫓아가 보고

박근혜, 정동영과 같은 정치인들, 남희석, 김제동, 장기하 등 연예인들, 그리고

트윗을 즐기는 경영자들 박용만, 정용진, 시골의사와 강풀까지...

갤럭시를 가지고 트위터와 꼼지락하는 새 오전 2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갈치시장 회로 점심을 하고 애들 못 가본 태종대에도 들렀으면 좋겠는데...

더운 날 무리하지 말자는 아내의 말을 좇아 결국 자갈치시장은 생략하고 송정에 가기로 했습니다.

기장 짚풀 곰장어로 점심을 하고 송정해수욕장에 갔다가 달맞이고개를 넘어 오기로.  

 

30년전, 송정리.

그 땐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듬어지지 않은 작은 어촌 모래밭이었지요.

지금은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서 현대식 넓은 해수욕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빼곡히 줄지어 주차된 공간에 차를 세워두고 뙤약볕 내리쬐는 모래밭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금릉군 부항면 지좌리.

79.7월 하계농촌봉사활동을 마치고 송정리 해수욕장에서 가졌던 시온수련회.

송정 민박집에서 맞이한 첫날 새벽, 그 파도소리를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합니다.

파도소리에 잠 깨어 뛰쳐나갔던 모래밭.

한쪽 구석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지 새벽굿판이 벌어져 있었고

저 멀리 모래밭에는 벌써부터 젊은 것들 여럿이 나와 장난을 치고 있었지요.

스치는 얼굴들... 태정, 윤진, 은옥, 광민, 철우, 화진, 성희, 명혁...

30년전 그 날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젊은 날의 그 새벽을 추억합니다.

철없이 모래밭을 뛰어다니던 그 선한 얼굴들을 떠올려 봅니다.

아- 마냥 빛나기만 했던 어린시절...

 

부산서 군생활을 했다는 박 차장이 꼭 가 보라고 했던 달맞이고개 그리고 빈스빈스.

이 곳을 찾는 이들이 즐긴다는 커피, 와플, 눈꽃빙수도 챙겼습니다.

아침식사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병훈이 녀석이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요.

아마도 식중독인 듯 보입니다.

 

병훈이도 그렇고 작열하는 태양아래 낮 더위도 피할 겸 해서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다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돌아갔습니다.

진정한 휴식...

잠깐 낮잠을 취한 후 나는 트윗학교 오후반에 등교.

이노무 트윗... 회색도당.

앞으로 내 많은 시간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될 것만 같습니다.

 

석양빛 물들어 가는 해변이 좋아 보여서 병인이와 함께 저녁산책을 나섰습니다.

한낮 더위가 가시고 그림자도 길어지면서 해변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건강한 젊음... 이 선남선녀들이 얼마나 예쁘고 잘 생겼는지...

밀려드는 파도와 장난을 하면서 웨스틴조선에서 저 멀리 왼쪽 해변 끝까지 걸었습니다.

썰물, 해변, 석양, 파도, 사랑, 여름... 온갖 낭만적인 노래가사들이 절로 떠 오릅니다.

아내는 병훈이를 지키다 결국 가까운 병원을 다녀 왔다고 했습니다.

Placebo효과인지... 이 녀석, 링거 한 병에 많이 회복된 모습입니다.

 

이 눔들을 호텔에 두고 미성이와 둘이서 밤 데이트를 나섰습니다.

해운대 고층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광안리 쪽으로 난 해안도로에서 저 멀리 바라보는 광안대교.

야경이 일품입니다. 길 따라 줄지어 선 카페에는 행복을 머금은 선남선녀들로 그득하고...

우리도 그들 틈에 들어가 Van Gogh's Terrace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파스타, 아사히, 밤공기, 기분좋은 냄새와 소음들...

여유와 넉넉함, 그리고 Relex를 만끽하는 해변의 밤입니다.

부산, 해운대가 좋아집니다.

 

 

7.30(금)

 

5일간의 바닷가 휴식.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로 서울로...

부산을 벗어나면서 길을 잘 못 읽어 그만 엉뚱한 길로 들어섰는데...

저 멀리에 익숙한 이름 - '연산동, 동래산성'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대학 2학년 겨울. 동래산성 수련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1박 2일'답사를 온 적이 있지요.

아- 1981.2月, 그리고 그 후...

 

차는 무척산 터널이라 팻말이 붙은 길을 지납니다.

여긴 1학년때 동계수련회를 했던 곳.

해발 700m, 정상에서 나무해서 불도 때고... 정말 고생했었던...

이렇듯 나는 옛 추억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차는 절로 굴러갑니다.

 

최근 몇 년간 다녀온 여름휴가 가운데 제일 좋았습니다.    

미성이와 애들도 비교적 만족해 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 또 하나, 아! 맛있게 먹은 지역음식들...

도장포 멍게비빔밥, 한치물회, 밀물식당 생선구이, 해운대 암소갈비,

기장 짚불구이 곰장어, 뚱보할매 충무김밥, Van Gogh's Terrace 파스타까지...

 

Goooooooooooooooood!

 

                                                                - 201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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