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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접기로 한다

by arthe403 2023. 1. 21.

접기로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 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접어야
 종이 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내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 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 박영희

 

 ***


지난 주말,
 
정말 간만에 아내와의 氣쌈!
30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늘 그래 왔듯이 역시나... 또 敗.
 
지난 토요일 나들이길, 아내와의 작은 긴장.
늘 그렇듯이 이런 일은 아주,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데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운전이 너무 거칠다고...
나 나름대로는 적어도 남들보다는 gentle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래도 아내의 그 절대 기대치에는 늘 미치지 못합니다.
 
차안에서 발생한 그 긴장은 집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고
급기야는 근래 내가 회사일로 가족들에게 소홀한 가운데 생긴
몇 가닥 서운함 마저 보태지고... 
 
··· ···

예상치 못한 확전 분위기에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깨끗하게 백기투항 함으로써 그 날 긴장은 가라앉았는데...
그 후로 한동안 가시지 않는 뭔가 내 맘속 억울함은...
 
 
일요일 저녁을 먹은 후,
시간을 죽이다 그냥 잠자리에 들기가 좀 그래서
있던 차림 그대로, 반바지에 샌들차림, 우산을 들고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둘째를 데리고.
 
7월말 계획중인 여름휴가를 앞두고
읽을 책이라도 몇 권 살까 해서 시내 영풍문고엘 들렀습니다.
재밌는 소설 1권, 수필집 1권, 신앙서적 1권 ...
 
혹시 또 다른... 이런 마음으로 도서 진열대를 지나다가
스테디셀러코너에 놓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언뜻 눈에 들어 왔는데 이미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되어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 훨씬 더 예쁘게 장정해서 읽기 쉽게 편집되어 나와 있었습니다.
 
문득 전날 아내와의 一戰이 생각나서
어제, 우리 커뮤니케이션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혹시나 무슨 실마리라도 있을까 해서 이 한 권을 더 추가했지요.
 
계산대 앞에서 둘째 녀석이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책에서 "화성에서 온..."을 보더니
'아빠... 이 책 엄마가 집에서 읽는 것을 봤는데요?'
곧 바로 집에다 전화해 물었더니 지금 집 책꽂이에 그 책이 있다면서
'당신이 전에 그 책 한 번 봐야겠다며 사 두시고선... 벌써 오래 전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씩은 별 것이 될 때도 있는 이 부부간의 소통장애.
드물긴 하지만 우리 내외에게는 아직도 간간이, 예고없이 일어납니다.  
혹시 이것이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그래서...
접기로 한다...

 

                                                                            2009.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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