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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먼저 갑니다

by arthe403 2023. 1. 19.

매년 이맘 때면 회사에서 人事가 있습니다.
승진과 보직 이동자 명단을 발표하는데
회사에서는 대개 '定期人事'란 이름으로
매년 연초에 실시하고 있지요.
혹 높은 분들은 이름이 신문에 나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평생을 몸담아 온 조직을

뒤로하고 소리없이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엊그제 함께 일하던 선배동료 한 분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흔히들 얘기하는 "짤린" 것이지요.
그 역시 지난 이십 수년간 지구촌 각국을 발로

누비며 젊음과 열정을 묵묵히 외길 하나에 쏟아

부었는데 그 외길, 사랑하는 일터를 떠난 것...
여러 가지 회한과 소감, 앞으로의 계획을 몇 줄

글에 담아 가까운 선후배 동료들에게 보내고선

훌쩍 떠났습니다.
"먼저 갑니다. ..."

 
어제 아침. 회사내 승진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된 명단에 들지 못한 몇 몇 동료들과
위로의 자리를 만들어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낙심과 실망으로 의기 소침해 있는 그들과 함께
人生事, 숱한 얘기들을 나누긴 했지만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지.. 그리고 우리네 

긴 인생행로에 그노무 승진이라는 것이...

 저녁식사 후 답답한 가슴으로 집에 왔더니 아내가

침울한 얼굴로 무너진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요.

평소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다른 선배 한 분이

이번 인사에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친동기처럼

가깝게 지내온 그 분의 부인과 통화했다는데...

이 '마른하늘 날벼락', 

이만리 떨어진 두 사람간 전화통만 붙들고 같이

눈물 한말씩 쏟은 모양입니다.
 


나도 드디어 

5년간 주재를 마치고 1월 말 본사로 귀임합니다.
그간 많이 희망하고 바라던 결과여서 참 좋습니다.
사실 아내는 벌써부터 기대감에 마음이 들떠 있기도 

했지요.


"주재기간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과와 보람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해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앞으로 회사에 

 더욱 쓸모있는 인물이 되겠습니다."
 이렇듯 모범답안을 혀끝에 달고 

 바라던 서울로 들어가는데...

 회사에서, 

人事의 뒤안길에 널린 씁쓸한 단면들을 보면서
마치 머지않은 훗날 나의 일 같기만 해서

쉬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마냥 무지개 빛만은 아닌 터,
궂은 날을 대비해 신발 끈부터 단단히

동여매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 2006. 1. 4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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