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일터를 천안으로 옮긴 후로 평일은 늘 그렇습니다.
이른 시간 출근해 오후 내내 부산히 바쁘다 적당히 늦은 시간에 귀가해
빈집에서 혼자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반복되는 일상.
그렇지만 주말은 다르지요.
아니 뭔가 좀 다르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늘 그렇듯이 어제도 오전에는 회사에서 잔무를 챙겼습니다.
요즘은 토요일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올 한해는 좀 바쁘게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두루 좋을 듯 해서.
어제는 용호가 집안 일로 처와 함께 서울에 온다 했지만 병훈이의 예정된 행사로 인해
서울서 저녁을 함께 하기가 어려워 대신 천안에서 점심을 했습니다.
마침 미성이가 금요일 오후부터 탕정에 와 있었기에 두 내외가 함께 자리를 했지요.
작년 이맘때 대구서 점심을 같이 한 이래 실로 1년만 입니다.
점심을 나누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을 나누다 갑자기 "야! 찬영이 너... 머리 좀 숙여 봐라."
이미 오래 전부터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과 함께 머리 숱도 조금씩 빠져서 내내 고민해 왔는데
이 친구가 내 숙인 머리에서 그만 성글어 가는 정수리부분을 본 모양입니다. ... ...
저녁엔 둘째 병훈이가 다니는 대학 교향악단 신춘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60여명의 교향악단 가운데 앉아 있는 이 녀석이 얼마나 기특해 보이던지...
전혀 상상치 못한 모습. 어릴 적 그저 깽깽~~ 억지로 바이올린을 배우던 녀석이...
다 자란 녀석들의 무대에서 저렇게 함께 선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아직도 많이 서툰 아마+아마추어에 불과하지만 이 자리에 서기 위한 이 녀석의 노력.
지난 1년간, 특히나 이번 겨울방학 3개월 동안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량을 연마해 온
이 녀석의 힘들었던 그 노력을 나는 압니다. 귀여운 녀석!
함께 연주하고 있는 젊은 애들, 바르게 자라고 있는 듯한 이들 모두가 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연주시작 전 누군가가 군기라도 잡았는지 연주회 전반부 내내 이들 얼굴이 많이 굳어 있습니다.
어린 녀석들의 어울리지 않는 이런 진지한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intermission이 지나서야 비로소 몇 몇 얼굴에 표정이 담기기 시작합니다.
끝 무렵 박수 칠 땐 객석 여기저기서 무대위 친구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마저 들리고...
어른들의 기성 음악회장에서는 보기 드문 amateurism 그 자체를 보게 됩니다.
아내도 둘째가 그렇게 기특한 모양입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예쁜 꽃 묶음도 안겨 주었지요.
연주무대에 앉은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첫째의 시선엔 부러움이 한 가득 입니다.
이 녀석... 대학입학 때부터...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에 참여하라고 애비가 그렇게 일렀거늘...
가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밴드로 옮겨 베이스를 한답시고 바쁘다 결국 몇 달을 못 넘기고
이젠 흑인...무슨 동아리?? 아이고오~
올가을이면 입대할 이 녀석, 이 나이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매듭지어 놓은 것 없는 이 녀석이
나는 아주 못 마땅합니다. 둘째보다 장점도 많은데... 착하고 음악적 재능도 훨씬 낫고...
이 녀석이 요즘은 다시 기타를 제대로 해 보겠다며 아침저녁 내내 '딩가딩'입니다.
음악회 뒤풀이가 있다는 둘째를 뒤로 하고 아내와 첫째를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
제대로 된 족발을 한 번 만나게 해 달라며 보채는 큰 녀석과 함께 장충동을 찾았습니다.
늦은 시각인데도 주변이 많이 붑빕니다. 식당에도 식객으로 가득 차 있고...
오늘 일요일,
아침식탁은 준비되었지만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녀석들...
뒤풀이로 새벽에 귀가해 거실 소파에 쓰러져 있는 둘째는 그렇다 치더라도 큰 녀석도 참...
겨우 흔들어 깨워 아침을 먹은 후 교회엘 가려고 막 나서는데 방에서... 웬 기타소리?
이제 막 아침을 먹고 돌아선 큰 녀석이 파자마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못마땅한 속내를 달래다가 결국 한마디 찔러 주었지요.
"병인아... 살면서 네가 꼭 명심해야 할 일은,
네 앞에는 항상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물론 둘 다 해야 하겠지만 우선 순위가 있는 법,
네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을 꼭 먼저 하도록 해라.
그것이 성공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선택한 생활의 원칙이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한 이 말... 바로 나 자신에게 한 말이네요.
교회로 가는 길.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맹서합니다. 이 시간이면 내가 늘 하는 짓입니다.
"내, 교회로 가는 20분간 진짜로 best driver가 되어 우리 미성이 싸모님 정말 편안히 모실게..."
그런데 불과 5분도 못 가서 急 브레이크!
금방 깨지고 말 이 헛된 맹서를 언제까지 되풀이 하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오늘도 무슨 공연이 있는지 방송차량이 광장을 에워싼 채 작업자들이 바쁩니다.
오늘 목사님 설교말씀 가운데 "아내를 사랑하며 잘 챙기고 계십니까?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십니까?
꼭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실수가 없는 분임을 믿으신다면 두 사람 부부로 짝지어 주심도 믿고
감사하며 섬기고 사랑하십시오."... 지극히 맞는 말씀. 고개를 끄덕이며 A-man으로 받았습니다.
예배마치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는 그 시간에 졸았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책 몇 권 사려고 교보에 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광화문 교보빌딩 전면에는 커다란 걸개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온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라는 詩라고 합니다.
내가 필요한 책 3권, 둘째 연주회 축하선물 '금난새 클래식...', 첫째를 위한 영어책 1권,
아내를 위한 심심풀이 연애소설 'Dear John'... 아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휴일 오전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서점을 찾는 가족들... 그들의 건강한 얼굴이 많이 부럽습니다.
우리 애들 한참 자라던 내 젊은 시절에는 왜 이렇게 살지 못 했을까?
엊그제 경칩도 지났는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여민 옷깃엔 아직도 겨울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봄은 저 모퉁이까지 왔지만 꽃샘추위 시샘에 아직도 멀게만 느껴집니다.
집으로 오는 길, 명동 신세계를 찾았습니다.
꼭 사야 할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꼭 들르게 됩니다.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 곳은 우리 내외의 주말 놀이터가 됩니다.
내가 백화점 가기를 좋아하는 것은, 고운 옷 차려 입고 밝은 표정으로 백화점에 나들이 온 이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입니다. 이들을 보며 나도 같이 절로 행복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밝은 실내, 사각사각... 싫지 않은 소음들, 코끝을 스치는 여기저기 달큰한 삶의 냄새들...
아내도 백화점 가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것은 나와 마주해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아내와 함께 주말에 종종 백화점을 찾는 것은 우리 둘만의 값싼 '사치'입니다.
12층 갤러리에 봄꽃 드로잉展이 열렸기에 잠시 자릴 빛내주고... 그래도 봄은 오고 있네요.
백화점 곳곳을 밝히는 봄빛 장식에서, 그리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 팔에 걸친 옷자락에서.
요즘은 유난히 거리를 지나는 중년들의 모습에 자주 눈길이 갑니다.
점잖게, 곱게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라도 만나게 되면 나도 그들을 닮고 싶습니다.
부부인 듯 다정하게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렇게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연세가 더 드신, 그래서 머리에 곱게 서리가 내린 어르신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4시경 집에 도착.
오늘 주일저녁은 서울 집에서 쉬며 보내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가는 일본어교습, 주말복습이 다소 거슬리긴 하지만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싶습니다.
IPTV QOOK을 통해 지난 주 방영했다는 '콘서트 7080'을 꺼내 보았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지요.
장은아의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를 보며 대학 1,2학년시절 김태정이 녀석과 철없이 쏘다니던
그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아- 지금 우리 병인, 병훈이 나이가 바로 나의 그 무렵이로군요.
최백호가 또 출연했습니다. 멋있게 늙어 가는 가수. 오늘도 인생을 멋지게 부릅니다.
그런데 라운드T에다 재킷을 걸친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데... 나도 저렇게 한 번 입어 볼까?
주일저녁 모처럼 집에서 애들과 저녁도 먹고 '개콘'도 보고...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오늘 아침, 큰 눔에게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해서 지혜롭게 살라고 해 놓고선...
정작 애비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2010.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