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아침,
햇볕 잘 드는 조용한 주방~
황금들 누룽지, 오븐에 100초!
먹기 좋게 식히며 기다리는 시간,
이 때가 바로 내 설거지 타임이다.
간밤에 미성이 씻어 둔 그릇들
하나씩 물기닦아 제자리 찾는 일,
지난 봄 코로나에서 시작된 집콕~
사회적 격리가 만든 내 아침 聖事-
어쩐지 오늘은 그릇이 좀 많다?
그릇을 닦으며 어제를 복기해 보니
맞다.. 엊저녁엔 처제가 다녀갔지..^^
추석연휴 벙개~
병인이 식구에 병훈이까지..
추석연휴 집이 많이 북적대다가
어젠 저녁을 앞두고 뭔가 적적해
가까이 사는 처제내외를 불렀다.
내가 괜한 일을 만들었나 했더니
처제, 미성이가 잘 호응을 해서
그 벙개가 이루어진 것~
마침...
친정간 뜨루가 보낸 우림이 영상
그 녀석 얘기가 많았다. 다- 자랑~^^
이제 우리 서로같이 늙어가는 얼굴,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 둘걸~
그래.. 내친 김에 오늘은
식기건조기까지 욕심을 내본다.
둔탁한 건조기 문을 여는 순간
아래위 그릇, 집기들로 가득한데
아- 습한 공기와 함께 특유의 냄새~
벌써 봄, 여름 지나고 가을~
이렇게 틈틈이 그릇을 닦으며
내 설거지솜씨도 많이 좋아졌다.
소리안내고, 얼룩안지고, 안섞이고,
제자리에, 가지런히, 긁히지 않게~
혹시라도 그릇을 씻게 될 때면
세제 흔적이 조금도 없도록...
우리집엔 그릇이 제법된다.
아니 아~주 많다. 이 많은 그릇들을
우리 미성인 수시로, 특히 누구라도
오시는 날이면 원없이 꺼내 쓴다.
시집올 때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후 영국 살 때까지 쉼없이 꾸준히
그릇 욕심만은 거두지 않던 미성씨-
이 평온한 주일아침에
그 그릇들을 하나하나 꺼내 닦으며
나는 미성이의 30년을 생각해본다.
미성이와 지내온 30년을 떠올려본다.
이래서 난 설거지가 좋다.
지난 봄,
누룽지 보울부터 시작해..
조금씩 양이 늘어 가더니 오늘은
은수저에다 식기세척기까지~
가히 혁명적 진도가 나가 버렸다.
미성씨, 조심해~!!
내 언제 부엌까지 점령할 지 몰라~^^
오래전에 읽은
일본 어느 작가가 쓴 책엔
남자가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부엌을 장악하라"고 쓰였다던가?...
아무려면 장악할 것이
이런 사소한 설거지이겠는가?
스스로 그 사내 입을 감당할 만한
요리자급력을 갖추라는 뜻일테지..
된장찌게, 커리, 파스타..
나도 은퇴하면 이 셋은 꼭 익히려 했다.
내 위시 리스트에까지 올려 놓았지만
아직 난 라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 20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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